세 얼간이: 교육과 성공,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영화 세 얼간이


<세 얼간이>(3 Idiots, 2009)는 단순한 청춘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왜 공부하는지, 성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란초(아미르 칸)는 기존의 주입식 교육을 거부하고, 진정한 배움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의 친구인 파르한과 라주는 전통적인 성공의 개념에 갇혀 있지만, 란초와 함께하면서 점차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된다. 영화는 교육과 성공의 관계를 탐구하며,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1.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영화 속에서 인도의 명문 공과대학 ICE는 학생들에게 엄청난 경쟁을 요구하며, 성적과 취업이 곧 성공이라는 논리를 강요한다. 학생들은 지식을 깊이 이해하기보다는 시험 점수를 위해 암기하는 데 집중하고, 지나친 압박 속에서 고통받는다. 그러나 란초는 교육이 단순한 성적이 아니라, 창의적 사고와 실질적인 배움을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개념은 존 듀이(John Dewey)의 ‘진보주의 교육 철학’과 연결된다. 듀이는 교육이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학생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란초의 방식은 바로 이런 교육 철학을 반영한다. 그는 교과서 속 이론이 아니라, 실험과 실습을 통해 직접 배우고 경험하는 것을 강조한다. 반면, 영화 속 교장 비루 사하스트라부데(보만 이라니)는 성적 중심의 전통적 교육 방식을 고수하며, 학생들에게 창의성보다 순응을 요구한다. 이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규율과 처벌’ 개념과도 연결된다. 푸코는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원하는 형태로 개인을 길들이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영화 속 교육 시스템 역시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성공 모델을 강요하며, 이 과정에서 개성과 창의성을 억압한다. 그렇다면 교육은 개인의 성장과 창의성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성공을 위한 도구인가? 영화는 이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2. 성공이란 무엇인가?

란초는 성공이란 성적이나 직업적 성취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그의 친구 라주는 안정적인 직장을 목표로 하며, 파르한은 부모님의 기대에 따라 엔지니어가 되려고 하지만, 사실은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 영화는 성공이란 개인이 설정하는 것이지, 사회가 강요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개념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성공의 철학’과 연결될 수 있다. 보통은 사회가 정의하는 성공이 반드시 개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며, 각자가 자신만의 가치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영화 속에서 란초는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영화는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의미의 추구’와도 맞닿아 있다. 프랭클은 인간이 삶에서 의미를 찾을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보았다. 란초는 단순히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만족을 느낀다. 반면, 영화 속 경쟁 시스템에 갇힌 학생들은 성공을 목표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결국, 영화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성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공이란 무엇인가? 높은 성적과 좋은 직장이 성공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성공인가? 영화는 단순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관객들에게 이 질문을 고민하게 만든다.


3. 결론: <세 얼간이>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

영화 <세 얼간이>는 교육과 성공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왜 공부하는지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교육이 단순히 성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창의성과 자기 계발을 위한 과정임을 강조한다. 또한, 성공이란 사회가 정한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란초는 사회적 성공보다 배움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 반면, 라주와 파르한도 란초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가 단순히 직업적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세 얼간이>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 영화는 이 질문을 남기며, 관객들에게 자신의 삶과 목표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