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하고인: 시간과 인간관계, 우리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산하고인>(山河故人, Mountains May Depart, 2015)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탐구하는 영화다. 영화는 1999년, 2014년, 2025년이라는 세 시점을 배경으로, 주인공 타오(자오 타오)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삶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왕샤오슈아이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과거의 선택이 현재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우리는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묻는다.
1. 시간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영화의 첫 번째 파트에서 타오는 두 남자친구, 장진성과 량즈룬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장진성을 선택하고 량즈룬과 멀어진다. 이 선택은 단순한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사회의 경제적 변화와도 연결된다. 1990년대 말 중국은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경제로 전환했고,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사랑보다 물질적 가치를 선택해야 했다. 이 개념은 마르크스(Karl Marx)의 ‘경제적 토대와 상부구조’ 개념과 연결될 수 있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조건이 인간의 의식과 관계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타오의 선택 역시 단순한 감정적 결정이 아니라,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고려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선택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녀는 장진성과 이혼하고, 아들 달레를 잃어버리듯 멀어지게 된다. 반면, 량즈룬은 힘든 삶을 살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을 끝까지 간다. 이 과정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존재와 시간’ 개념과도 연결된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시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형성하며, 과거의 선택이 현재의 정체성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타오의 삶은 그녀의 과거 선택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을 받으며, 그녀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시간은 인간관계를 변화시키는가, 아니면 우리가 변화를 선택하는가? 영화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과거의 선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2. 과거는 우리를 따라오는가?
영화의 두 번째 파트에서 타오는 중년이 되었고, 아들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된다. 아들과의 거리는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멀어지고, 그는 점점 어머니와의 관계를 단절해 간다. 언어와 문화적 차이는 세대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며, 아들은 점점 자신의 뿌리를 잊어버린다. 이것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오리엔탈리즘’ 개념과 연결될 수 있다. 사이드는 서구 사회가 동양을 이질적인 존재로 바라보며, 문화적 정체성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분석했다. 영화 속 타오의 아들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서구에서 성장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점점 잃어간다. 또한, 이는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언어와 정체성’ 개념과도 연결된다. 라캉은 언어가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다. 타오의 아들은 중국어를 점점 잊어가며, 결국 어머니와 소통하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형성된 문화적, 심리적 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영화는 과거가 단순히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 속에서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3. 결론: <산하고인>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
영화 <산하고인>은 시간과 인간관계의 변화를 탐구하며,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묻는다. 영화는 인간관계가 단순히 감정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와 개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관계가 변화하더라도, 과거의 흔적은 여전히 우리를 따라온다는 점을 강조한다. 타오는 아들과 멀어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아들 역시 어머니와의 관계를 잊으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 속에 여전히 중국이라는 뿌리가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이는 우리가 과거를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으며, 그것이 우리의 존재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한다. 결국, <산하고인>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시간이 흐르면 인간관계는 필연적으로 변하는가? 영화는 이 질문을 남기며, 관객들에게 시간과 관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